이런 저런 이야기/편린들
라면의 추억
가별소리
2017. 12. 6. 21:17
희뿌연 하늘,
불어오는 찬 바람에 흙먼지 피워오르는 황토마당,
솥 걸어 밥하던 녹슨 양철화로,
철근 두 가락에 걸터 앉은 양은 냄비,
둘러앉은 배고픈 눈망울.
"형아! 라면 언제 먹어?"
꼬르륵
뱃속 고동소리,
빈 젓가락 입에 물며
묻던 동생들의 그 목소리,
그 눈망울,
40년의 시간을 넘어
문득
가슴 먹먹함으로
눈가에 물기를 채웁니다.
재 너머 밭에 가신 부모님,
모시러 간 해는 아직
뒤 안 흙담에 걸쳐있는데,
일찌감치 흔적 만 남기고
사라져버린 콩가루 주먹밥.
배고픈 동생들 핑계삼아
찬장 위 10원짜리 동전 두 닢으로
앞 집 아줌마네서 사 온
삼양라면 한 봉지,
바람이 흩어버린 불기에
미지근하게 버티는 양은 냄비,
배고픈 기다림이 들어올린 뚜껑 아래
솔솔 피워오르는 김,
"형아, 아직 안 됐어?"
"쪼매만 기다려 봐, 짜슥들아!"
그렇게 뚜껑을 열 때마다
불어오른 라면,
"인제, 우리 세 명 먹어도 되겠제, 그자!"
"형아 그냥 먹자!"
"끓어야 먹지, 김 나잖아! 쪼매만 더 기다리 봐!"
몇 번을 열었다 닫았다
스프 넣고 저었습니다.
그렇게 생애 처음으로 라면을 끓였습니다.
"엄마가 끓인 거는 맛있던데..."
"먹기 싫으면 먹지 마 임마!"
그 마당,
그 화로, 냄비 라면,
그 소리, 그 눈망울이
아련한 그리움으로 가슴을 울립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