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 사회복지사의 말씀 듣기 00014 ]
저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세요,
저 여종의 아들이 내 아들 이사악과 함께 상속을 받을 수는 없어요.
아브라함에게는 이 일이 무척이나 언짢았다.
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.
언짢아하지 마라.
(......)
내가 그도 한 민족이 되게 하겠다.
(창세 21,10~13)
하느님의 약속은 아브라함과 사라, 그 둘로부터 나오는 적통의 전유물이 아니다.
그 옛날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던 종인 하가르와 그 자식인 이스마엘에게도,
아브라함이 더부살이 했던 이방인, 팔레스타인 부족의 왕인 아비멜렉과 그의 일족에게도
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복을 빌어주는 존재였다.
그것이
시기와 질투로 하가르와 그 아들을 사막으로 쫓아낸 사라,
그리고 우물을 두고 다투었던 이방부족 왕인 아비멜렉과 맺은 계약,
그 이야기를 전하는 창세 21,8~34이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이다.
많은 조직과 단체들이 정체성(identity)을 고민하고 있는 듯 하다.
정체성을 달리보면 "나 다움"이다.
그러나 "나 다움"은 다른 사람과의 서열적 차별, 배타적 독보성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.
무지개 7색처럼 함께 어울려 아름다움을 빚어낼 수 있는, 공유하며 어울릴 수 있는 자기다움일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.
요즘 카톨릭 교회의 사회복지, 즉 카리타스 내에서도 그 본질적 정체성, 카리타스 다움을 고민하고 있다.
사회복지사협회는 그 정체성을 전문성에서 찾고, 그 전문성을 담보해내기 위해 진입장벽을 높이겠다는 의지인지
2급 시험 도입을 정책으로 밀고가려 한다.
그러면 희소성이 높아지고 그러면 전문성이나 처우가 좋아질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 것인지......
카리타스도, 사회복지도 어느 특정 단체의 전유물이 아니다.
그 안에 담긴 가치를 내면화하고,
삶으로, 일로, 활동으로, 다양한 주체들과의 연대와 협동으로
살아내는 이들이, 살아내는 조직이 카리타스이고, 사회복지이다.
그들은 그 삶으로, 활동으로, 관계로
아브라함이 "브에르세바에 나무를 심고 영원한 하느님이신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" 부르는 것이다.
창세기의 이 대목에서 나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떠올린다.
나에게 '주님, 주님!';한다고 모두 하늘나라게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.
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.
(마태 7,21)
이제 Caritas에, 우리나라 사회복지에,
그 둘에 발 걸치고, 몸 담고 있는 내 자신에게 묻는다.
다움, 정체성을 어디에서 찾는가?
다움, 정체성을 어떤 활동으로 담아 내는가?
다움, 정체성을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고 경험하게 할 것인가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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